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대 개새끼론 (문단 편집) === 2000년대: [[X세대]], [[에코세대]] === 1978년생~1990년생인 현재 30대 중반~40대 중반이 대상이었다. 다만 이 칼럼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대중문화 전성기를 연 1990년대의 대학생들을 통틀어 종합하여 지적한 경향이 강하다. 2003년 칼럼 작성 당시 트랜드에 집중했다면 인터넷과 검색을 언급했을 것이다. >{{{[특별칼럼]}}}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 당한 것이다. 줄세우기 경쟁에서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그대의 성적을 보고 대학과 학과가 그대를 선택한 것이다. '적성' 따라 학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성적' 따라, 그리고 제비 따라 강남 가듯 시류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그대는 지금까지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을 앞으로도 읽을 의사가 별로 없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한 학생은 영어, 중국어를 배워야 취직을 잘 할 수 있어 입학했을 뿐, 세익스피어, 밀턴을 읽거나 두보, 이백과 벗하기 위해 입학한 게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어학원에 다니는 편이 좋겠는데, 이러한 점은 다른 학과 입학생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문학의 위기'가 왜 중요한 물음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는 인간에 대한 물음 한 번 던져보지 않은 채, 철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사회와 경제에 대해 무식한 그대가 시류에 영합하여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선택했고 의대, 약대를 선택했다. > >한국 현대사에 대한 그대의 무식은 특기할 만한데, 왜 우리에게 현대사가 중요한지 모를 만큼 철저히 무식하다. 그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동안 진정한 민족지였던 <민족일보>가 어떻게 압살되었는지 모르고,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그대는 민족적 정체성이나 사회경제적 정체성에 대해 그 어떤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을 만큼 무식하다. > >그대는 무식하지만 대중문화의 혜택을 듬뿍 받아 스스로 무식하다고 믿지 않는다. 20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읽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문화가 토해내는 수많은 '정보'와 진실된 '앎'이 혼동돼 아무도 스스로 무식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학생인데!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 익숙한 그대는 '물질적 가치'를 '인간적 가치'로 이미 치환했다. 물질만 획득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신의 무지에 대해 성찰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 >그대의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그대가 무지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다.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동아리를 선택하려 하는가, 그리고 대학가에서 그대가 찾기 어려운 책방을 열심히 찾아내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 >홍세화 / 한겨레신문 기획위원,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저자 // 발행: 03/02/18 등록: 2003/02/18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초중고 12년 동안 [[입시]]를 위해 [[주입식 교육]]을 받았고, 부모의 지원을 받아 [[사교육]]비를 축냈다. * [[대학교]]에 가서는 술이나 마시고 놀고 먹기만 한다. * 제대로 된 [[고전]]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읽을 생각도 없다. * [[현대사]]에 무식하다. 그 예로 <민족일보>가 압살된 것과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이 다른지를 모른다. * [[대중문화]]에 빠져서 무식하고, [[황금만능주의]]에 빠져있다. 이 글은 당시에 약간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이 2020년대에 나왔으면 엄청난 논란이 생겼겠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큰 논란이 생기지는 않았다.''' 20대 대학생들이 많이 있던 커뮤니티인 [[오르비스 옵티무스]]에서도 절대 다수가 이 칼럼에 공감을 표했고, 극소수만이 강하게 반발했을 뿐이었다. 그랬던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수 있다. 일단 첫째로 홍세화의 칼럼은 20대 개새끼론이 주제의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기성세대가 받아들인 신자유주의적 질서와 가치관에 젊은이들마저 물들거나 이용당하지 말고, 과거의 저항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맞서 싸우라는 격문 내지 죽비 스매싱에 가깝다. 물론, 이제는 기득권이 되어버린 과거의 저항세력에게도 죽창을 겨눠야 한다.[* 아래의 반론에서도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칼럼에서 대학생들이 이어받아야 할 과거의 유산으로 지목된 것은 엉망인 한국사회를 만든 기득권 세력의 유산이 아니라 엉망인 한국사회와 싸워 온 저항세력의 유산이다. 그 저항세력이 기존의 기득권들과 다를 바 없는 기득권이 되었다면, 다시 과거의 저항정신으로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즉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대한 숭배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저항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 사회가 엉망인 것을 반론의 근거로 드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실제로 홍세화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끊임없이 했다.[* 여담으로 홍세화는 86세대조차 아니며 대체로 1950년대생들인 유신세대(다른말로 산업화 세대)보다 조금 더 윗 세대이다.] 당시 홍세화가 활발하게 쓰던 다른 글들과 엮여서 읽으면 더더욱 그런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세태에 와서 저 글 하나만 던져놓으면 오해하기 쉽다. 또한 홍세화를 포함한 좌파 인사들에게는 세대론은 계급적 관점을 흐리는 위험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실체 없는 관념론에 불과하다고 추측할 수가 있다. 둘째로 당시의 대학생들은 2020년대와 달리 중년 세대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 있지는 않았으며[* 그런 정서는 노무현 정권 중반부터 서서히 심해졌다. 즉 이때는 그 시초쯤에 해당한다.], 굳이 따지자면 세대론적인 혐오의식보다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적대감이 더 컸던 시대이다.(수구꼴통, 종북좌빨 같은 말들로 대변된다.) 특히 저 칼럼에서 비판한 내용들은 2020년대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동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사실 칼럼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을 구분하는 사람은 수능에서 근현대사를 선택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도 스스로 자성을 하게 하는 장치였다.] 셋째로 홍세화라는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포지션 때문이다. 당시에 홍세화는 여러 책과 칼럼의 저자로 꽤 유명하고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원래 대학생, 청년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을 잡아 주는 멘토적 이미지가 강했다. 비판도 단순한 비난, 공격이 아니라 선배로서 정신을 일깨워주는 애정어린 비판이란 이미지가 강해서 대다수가 그리 기분나빠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저 칼럼과 비슷한 내용으로 홍세화가 무수하게 강연을 했지만 대부분은 기분 좋게 들었던 것이다.[* 물론 강연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이 대체로 진보적이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넷째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단지 정서상의 이유인데, 당시에는 2020년대보다 [[꼰대]]에 대한 반발의식이 훨씬 적었다. 오히려 호통치며 훈계해 주는 것이 인기가 있었다. 따라서 대학생들 스스로도 비판을 받으면 반발하기보다는 수용하고 자성하는 쪽이 되기 쉬웠던 것이다. 홍세화보다 훨씬 심하게 꼰대적인 논객들도 당시에 인기를 많이 끌었는데, 김형태의 인터넷 답변과 '너, 외롭구나'라는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이 책은 보수 꼰대적 성향에 가깝다.) 물론 당시에도 꼰대를 싫어하는 사람은 김형태를 역겨워하긴 했으나, 대학생이 많은 커뮤니티에서도 절대다수가 김형태의 글을 보고 감명을 받고 명언으로 프린트해서 걸어 놓곤 했다. 다섯째로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샅샅이 털어서 '발언자의 자격'을 검증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만일 홍세화가 지금 이런 주장을 했다면 그가 늘 주장한 서울대 폐지운동, 학력사회반대운동과 반대되는 딸의 학력이 문제시 되어 홍역을 치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여섯째로 당시 한국 사회는 민주화 운동이나 공안사범들에 대해 집단적 죄의식이 있었다. 서승이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다 분신 자살을 기도한 사건, 민청학련사건, 인혁당 사건 등 수도 없이 많은 군사 정권 시절 인권 억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당한 공안 사건이 있었더라도 당시 수사 과정이 지나쳤고 외면한 우리도 문제였다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신영복과 황대권의 책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따라서 [[남민전 사건]]으로 오래 망명 생활을 한 홍세화에게 감히 반박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2000년대에는 아직 교양주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사라지는 과정에 있기는 했으나 인문학적 사회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암묵적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존재했는데 홍세화가 이를 지적한 것이므로 정당한 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홍세화의 정치적 포지션과 연관해서, 보수, 극우적 입장에서 반발을 하기도 하고, [[이공계]]의 입장에서 이공계 전공자에게까지 왜 인문만 공부하라고 하냐라는 반발도 있었다.[* 2020년대의 분위기였다면 이런 의견이 무척 많이 나왔을 것이나, 당시에는 이공계가 많은 [[오르비스 옵티무스]]에서도 극소수만 이런 반발을 했다.] 좀 더 체계적인 반론은 다음 문단부터 서술한다. 당시 2000년대에 20대였던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생(현 40대)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던 X세대, 에코세대였다. 특히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컸고, PC통신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접하던 이들이었다. 이에 대해서 오마이뉴스에서 반박문을 기재하였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10478|#]] 반박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아직도 입시교육 수동적인 교육의 맹위는 일방적으로 학생들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와 체제가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강고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초,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입시경쟁'에 자기가 좋아서, 자기 판단하에 합류한 학생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그러한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기성세대인 부모와 교사들이고,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할 자유가 사실상 없다. 그런데 정작 위 칼럼은 그러한 '경쟁'을 타파하지 않은 학생들을 비난하고 있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머리띠 매고 거리에 나가 입시경쟁 타파를 외치는 데모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엄밀히 따져보면 86세대가 수능 1~2세대인 2000년대 초반 당시 20대(1975~1984년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그들은 주입식 교육의 끝판왕이었던 학력고사를 치러 대학에 입학한 세대이다.] 당연히 좌파라면 젊은이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해야지 책임을 대학생에게 묻는 질타가 타당한가? >2. 고전이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고전에 유식한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만들어 물려 주는 나라는 왜 독재 권력의 잔재, 세계최고의 부정부패, 망국적인 지역주의, 족벌기업과 언론, 천박한 자본주의, 지긋지긋한 학벌주의 나라인가?[* 물론 인문학적 사고 방식과 순수 학문, 예술에 대한 탐구와 존중의 자세를 기르는 것 자체는 세대를 불문하고 권장되어야 할 자세이긴 하다. 하지만 현대 [[문사철]] 학생들이 주변에서 듣는 소리에 조금만 귀기울여도 애초에 지독하리만큼 '''돈 안되는 학문'''에 립서비스만 했지 막상 대중이 이를 즐기고 존중할 만한 사회적 제반을 무너뜨린 이들은 20대가 아니다. '''원래 인문학적 가치관은 등 따습고 배부른 다음에야 함양할 수 있는 것이고''', 현대 한국의 장년층 세대는 그 기본적인 등 따습고 배부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장벽을 절망적인 수준으로 높여놓았다. 이러니 홍세화 세대의 사람들이 청년층 보고 '속물적이다', '천박하다' 따위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불쾌하고 이율배반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렇게 인문학을 중시하면서 정작 채용 과정에서 인문학도를 홀대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3. 현대사에 무식한 예시로 <민족일보>가 압살된 사례와 보도연맹과 보도지침을 모르는 것은 젊은이만 모르는게 아니라 기성세대조차 이것을 모르는게 태반이다.[* 참고로 민족일보가 창/폐간된 해는 1961년이다. 게다가 서울 한정으로 발간된 신문이기 때문에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기성세대나 수도권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당시 너무 어려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기성세대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젊은이들이 현대사의 세파에 무관심하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에는 부적절한 근거이다.] >4. 대중문화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총아이고 고전을 읽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이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것은 문제가 있다. 황석영이 말했듯이 나의 소설에 그들에게 맞는 코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 맞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내 소설을 읽을 것이다. 황석영이 말했듯이 '''"서로 코드를 끊임없이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진보운동이 다시 생명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보가 젊은이들의 코드를 맞출 생각을 해야지 젊은이들에게 각성하라고 외치는 것은 잘못이다. >5. 추가적으로 젊은이들과 대학생들이 신자유주의에 빠져 자본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좌파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보여준 타당한 준거틀이 있는지 의문이다. 유식하다면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해 분석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논리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지 않는가? 그저 젊은이들에게 책을보고 너네들이 해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정치적인 부분에서 비판한 사례는 2002년 노무현 당선도 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젊은 세대를 ‘사회적 철부지들’,‘앞으로도 설쳐댈, 대형사고칠 공범들’이라고 비난하고 인터넷의 활성화를 ‘조폭시대의 언어폭력’이라고 젊은세대와 인터넷을 비판하였다.[[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0301221818571|#]] 이후 2007년 8월 세대 간 착취로 인한 현 20대의 빈곤한 미래를 전망한 우석훈의 《[[88만원 세대]]》가 [[인터넷]] 공간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어 마침내 '20대 개새끼론' 이란 이름이 유명해졌다.[* 그도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결국 노골적 20대 개새끼론을 들먹이며 미명하에 그 책마저 자체 절판시켰는데 이게 공동저자인 박권일과는 사전협의 한마디 없는 독단적인 행위여서, 박권일은 이 우석훈의 태도를 두고 "유감스럽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또 무슨 이벤트이고 마케팅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도 청년들이 싸우지 않아 실망했다'는 우석훈 씨의 주장은 이 책에 대한 과대평가다'' 라고 [[트위터]]상에서 우석훈을 비판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던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한국]]의 20대^^1978년생~1990년생^^들은 2023년에 30대 중반~40대 중반이 되었다. 2009년 6월 8일, 당시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였던 [[김용민(1974)|김용민]][*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나왔고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 김용민이 맞다.] 이 충남대학교 신문에 기고한 '너희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는 글[[http://archive.is/xZHqD|@]]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42859|#]]이 퍼지면서부터 20대 개새끼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그 결과 파급력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상으로 20대에게 분노를 샀다. 김난도 교수는 위로라도 하려고 저서를 썼지만, 김용민은 제목부터 '너희는 취업 못 할 거다'라고 해석될 수 있었다. 제 대학생의 실명이 걸려 있었으면 법적 대응이 걸려도 할 말이 없을 사안이었다.] '현 20대는 [[정치적 무관심]] 및 체제 순응 경향이 심하다' 식의 담론을 편 것이 대표적이며, 당시 젊은이들이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적인 타파보다는 개개인의 경쟁력인 학습(소위 [[스펙]] 쌓기)에 너무 몰두한다는 것- 또는 [[반지성주의]]와 [[쾌락주의]]로 인한 20대의 지적 빈곤이 지적된 것이 20대 개새끼론의 최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세대의 파급력을 보고는 이들을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후 김용민은 2011년 11월 "제가 잘못 생각했다. 죄송하다"라며 해당 발언이 자신의 잘못이었음을 시인했다. 문제는 그의 잘못 시인이 자신의 저서 출간을 하며 이루어진 것으로, 저서의 가장 큰 예상 수요인 젊은 층을 다시 포섭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 다만 김용민의 저작은 꾸준했으므로 꼭 책 판매를 위해서라는 이유보다는 20대가 김용민이 주장하는 입장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에는 반대쪽에서 20대 개새끼론을 주장하고 있었고 김용민은 나꼼수 열풍과 함께 한참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이 당시 나왔던 담론은 개개인의 경쟁력인 학습(소위 [[스펙]] 쌓기)에 너무 몰두한다는 것- 또는 [[반지성주의]]와 [[쾌락주의]]로 인한 20대의 지적 빈곤 등의 주제었다. 일부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의 새로운 세대의 파급력을 보고는 이들을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2009년까지는 [[정치적 무관심]]과 20대의 투표율 저조 또한 20대 개새끼론의 근거였으나, 이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0대의 표심이 유래 없이 강하게 드러남에 따라 크게 수그러들었다. 심지어 20대 개새끼론의 기수이자 온갖 독설로 유명한 [[신해철]]조차 20대의 저력을 인정하고 당해 6월 4일 [[트위터]]에 "요즘의 20대를 깔보았던 나의 교만을 사죄한다"며 공개사죄, 5일에는 무대 위에서 '''큰 절까지 올리며''' 자신의 오판을 뉘우쳤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9&aid=0002270953|관련 기사]] 참고로 신해철은 이후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는지, 말년에는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https://youtu.be/VHQWVmuE58A|청년들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김용민, 신해철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단지 민주당과다른 진보정당에 투표하지 않아 20대를 공격했다는 20대 개새끼론의 얄팍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